미래의 지구에서 수면상승으로 생존이 어렵게 되자 인류는 우주의 쉘터로 이주하기로 결정한다. 그중 몇 개의 쉘터의 휴머노이드들이 자치국을 선언하고 연합군과 긴 전쟁을 벌인다. 그중 최강 용병인 윤정이(김현주)가 승승장구를 하다가 결정적 전투에서 패배하고 코마에 빠지게 된다. 이에 크로노이드사에서는 윤정이의 뇌를 복제한 전투 AI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시간이 지나 윤정이의 딸인 윤서현(강수연)이 자라 크로노이드 사의 연구박사로 취직하여 어머니를 복제하는 일을 담당한다. 매번 실패하는 프로젝트에서 크로노이드사는 이 프로젝트를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폐기하기로 한다. 어머니의 복제를 멈춰야 하는 윤서현은 어떠한 결정을 할 것인가?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가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도전과 답습. 그 경계에 선 영화
연상호 감독은 기복이 많은 감독입니다. "부산행"과 "지옥"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염력"이나 "반도"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긍정적으로만 보자면, 굉장히 도전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는 장르영화들을 과감히 추진하는 것은 큰 도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이" 또한 제작비가 200억 정도로 알려져 있어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에서는 잘 투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도전에 비해 스토리는 진부한 클리셰가 많고 신파적인 부분이 많아서 참신함이 떨어지는 면모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정이" 또한 같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글 서두에 대략적인 스토리를 적어놨지만 너무 뻔한 설정이어서 적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에 나오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테스트를 오마주했지만 영화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여서 종반에 윤서현에게 윤리테스트 어디서 봤냐고 소리 지르는 김상훈 소장(류경수)의 외침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서현과 정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말이지 80년대에 봤을 법한 설정과 대화들로 채워져서 서현의 결정이나 결말은 전혀 와닿지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눈물을 강요하고 있는데 전혀 슬프지 않아 관객이 오히려 머쓱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 나왔던 배우들이 큰 변화없이 나온 점도 영화를 지루하게 만듭니다. 어떠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류경수 배우와 이동희 배우의 역할은 "지옥"에서의 모습과 오버래핑되어 기대감을 시작부터 반감시켰습니다. 그리고 대본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김상훈 소장의 끊임없는 유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극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영화 전체적인 내용과는 상관없는 소재들의 나열 후에 갑자기 눈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도전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은 맞으나, 스토리라는 측면에서는 B급 감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보니 영화가 시작되고 30분 만에 모든 기대가 사라지게 됩니다. 어쩌면 "지옥"이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웹툰으로 이미 한번 검증받은 스토리를 근간으로 두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강수연이란
윤서현 역학을 맡은 강수연 배우는 요즘 세대에게는 낯선 배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한국영화에서 강수연 배우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씨받이"라는 영화로 우리나라 배우로는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월드스타라는 호칭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제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10년 만의 상업영화 복귀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22년 5월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랜만에 강수연 배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지만 더 각인될만한 영화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봐야 한다면
로튼토마토 신선도 48%, IMDb 5.4로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는 영화 정이를 봐야 한다면 2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이를 맡은 김현주 배우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현주 배우도 "지옥"에 이어서 두 번째 출연이지만 강인함 여전사와 엄마로서의 두 가지 모습을 적절히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CG자체는 훌륭한 것 같습니다. 연구소 내부 세트는 엉성하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들의 전투씬은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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